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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복수' 추구하는 엘렉트라…현실과 타협하는 크뤼소테미스

간용리 0 90 05.3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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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54) 타협(妥協)과 원칙(原則)

원칙 지키려는 엘렉트라
현실적인 크뤼소테미스
'아가멤논의 무덤에 있는 엘렉트라', 영국 화가 프레더릭 레이턴(1869년)범부는 타협하고 위인은 원칙을 지킨다. 보통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아부하기 위해 그들의 종잡을 수 없는 의견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수정한다. 하지만 위대한 자는 오랫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삶의 원칙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이해당사자들은 타협을 한다고 하지만, 종종 아무도 원치 않는 결론에 도달하고 이에 승복한다. 그 결말을 차선(次善)이라는 말로 치장하지만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만다. 그나마 긍정적인 결론을 얻으려면 몇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타협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사안을 숙고해 원칙을 도출하고, 대화를 통해 최선을 가려내고, 그것에 승복하는 용기도 지녀야 한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윤리와 정치에 관한 연구》(1932)라는 책에서 인간집단, 인종, 국가, 혹은 정당의 선택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보다 덜 도덕적이라고 지적한다. 개인은 도덕적이나, 사회는 비도덕적이다. 개인의 장점의 총합이 사회가 아니다. 그는 1820년대 미국 동부에서 움트기 시작한 ‘초월주의’와 ‘개인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초월주의가 주창하는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에 혈안이 된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초월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주적인 자아’, ‘초사회적인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에게 몰입하는 삶의 태도다. 개인의 위대함이 집단의 타협을 통해 도출된 평균보다 탁월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위대한 리더가 되기 위해 수련해야 할 덕목이 있다. 자신의 원칙을 대중에게 감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진정성과 수사학적 능력이다.

미국 사회과학자들은 니버의 주장을 사회 경험이 없는 신학자의 바람 정도로 폄하했다. 그러나 1930년대 등장한 파시즘, 나치즘,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상징하는 집단의 횡포와 악은 니버의 통찰이 옳았음을 보여줬다.

자매 이야기

아가멤논의 두 딸인 엘렉트라와 크뤼소테미스는 각각 원칙과 타협의 상징이다.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살해한 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의 정의다. 살인의 피의자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엘렉트라는 정의라는 원칙의 화신이다. 크뤼소테미스는 다르다. 그는 타협을 신봉한다. 아르고스를 통치하는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와 그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대항하는 일은 어리석고 위험하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 숙고할 여유가 없다. 현재 누리고 있는 공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안정이 자신의 양심이나 영혼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에게 정의란 현실과의 타협이다.

이 두 자매 이야기는 히브리 성서 《룻기》에 등장하는 ‘룻과 오르바’ 이야기와 비슷하다. 룻과 오르바는 모압(오늘날 요르단)에 살던 여인들이다. 이들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먹을 것을 찾아 모압으로 건너와 거주하던 유대인 형제와 각각 결혼했다. 룻과 오르바는 남편들이 똑같이 목숨을 잃자,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라고 권한다. 나오미도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참이다. 오르바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본인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한다.

성서는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지 않지만, 모압 여인 룻이 유대인과 결혼했을 때 그는 유대교를 받아들였다. 룻은 자신의 신앙과 철학이 혈연이 가져다주는 안락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룻은 신념을 택하고, 오르바는 타협을 찾았다.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들어간 룻은 나중에 다윗 왕과 예수로 이어지는 핏줄의 조상이 됐다. 룻의 신념과 정의가 있었기에 유대민족의 융성을 이룬 다윗 왕과 메시아 예수의 탄생까지 혈통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실험했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도시의 근간이 되는 도덕과 윤리를 그리스 비극 경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가르쳤다. 엘렉트라와 크뤼소테미스는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자신들의 생존, 평안을 위해 취해야 할 타협의 모호한 접점에 대해 논쟁한다.

본성

아르고스의 여인들로 구성된 합창대는 엘렉트라의 올곧은 마음이 안쓰럽다. 엘렉트라의 정의는 타협할 수 없는 삶의 기반이다. 엘렉트라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그들에게 말한다. “친구들이여, 내 지나친 비탄이 그대들에게 부담을 주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폭력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본성이 고귀한 여인이라면, 아버지 집의 재앙들을 보고 어찌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254~258행) 엘렉트라는 자신을 그리스어로 ‘유게네스 귀네(eugenes gyne)’, 즉 ‘고귀한 여인’이라 부른다. 그가 고귀한 것은 스스로 고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고귀함은 태생이나 환경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엘렉트라는 죽은 아버지의 옷을 입고 아버지를 살해한 화롯가에서 신에게 헌주하는 아이기스토스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그는 아이기스토스의 행위를 ‘오만의 극치’라 부른다. 아이기스토스는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왕권을 살인으로 쟁취한 ‘오만’의 극단적인 예다.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 역시 아버지 살해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살인자를 남편으로 다시 맞이할 정도로 타락했다. 엘렉트라는 클리템네스트라로부터 어머니라는 거룩한 이름을 제거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절도와 경건을 멀리한 클리템네스트라의 삶을 한탄한다.

크뤼소테미스

크뤼소테미스는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친부 아가멤논에게 바칠 제물을 들고 무대에 등장한다. 그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정의라는 원칙에 매달리는 언니 엘렉트라를 나무란다. “언니, 왜 또 문밖까지 나와 이렇게 중얼대요. 그토록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왜 언니는 무익한 원한을 품지 않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으세요?”(328~331행) 계속해서 언니의 고집을 힐난한다. “옳은 것을 따지자면 내 말이 아니라 언니의 선택이 옳아요. 하지만 자유롭게 살자면 매사에 통치자의 말을 들어야 해요!”(338~340행) 크뤼소테미스도 엘렉트라의 생각이 바르다는 사실은 안다. 그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는 스스로 선택한 가치에 몰입할 때 등장하는 단어다. 스스로에게 진실할 때 비로소 만끽할 수 있는 원칙이다. 크뤼소테미스에게 자유는 그러나 통치자로부터 나오는 허용일 뿐이다.

엘렉트라는 동생의 세속적인 말에 놀란다. “너는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나더러 행동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는구나. 그리하면 우리는 비참하고 비겁하기까지 한 거야!” 엘렉트라는 물질적으로 비참하게 살지만 정신적으로 비겁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풍성한 식탁과 사치스러운 생활이라면 비겁도 마다하지 않는 동생에게 실망한다. 비겁이 비참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크뤼소테미스는 이상에 빠져 헤매는 언니가 한심하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원칙과 정의를 신봉하는 엘렉트라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경고한다. “언니는 이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지하 감옥에서 세월을 보내며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심사숙고하세요. 나중에 불행을 당하더라도 나를 원망하지 마세요.”(379~384행) 그는 의붓아버지 아이기스토스가 궁궐로 돌아오는 대로 언니가 감금당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한다. 엘렉트라와 크뤼소테미스의 이야기를 들은 합창대는 판단한다. 그들은 정의의 여신이 곧 도래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크뤼소테미스보다 어머니 복수라는 정의의 원칙을 고수하는 엘렉트라의 말에 감동한다.

배철현 < 작가 ·고전문헌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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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특검에 출두해 사과성명을 발표하는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과 울고있는 부인 연정희씨.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9년 5월 31일 ‘야당의 전·현 정부 문제 인사 처리 비교’

‘옷로비’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1999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자료를 내놓습니다. 이름하여 ‘고급옷 사건을 통해 본 국민의정부와 문민정부의 문제 인사 처리 스타일 비교’. 정치인들이 하는 일엔 항상 ‘내로남불’의 성격이 가미되기에 평가의 내용이 얼추 짐작이 가긴 합니다만 그래도 한번 보실까요.

기사의 제목은 “DJ의 호통만 있고 책임지는 자가 없다”입니다. 제목만 봐도 YS에게 후한 점수를 줬을 거 같은 느낌이 드네요. ‘옷로비’ 사건은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로비를 한 사건입니다. 김태정 당시 법무장관의 부인도 로비를 받은 바람에 상황이 더 복잡해졌지요.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한다 하더라도 여론이 수용할지가 의문이었고, 여권내에서도 김 장관 고리를 풀지 않고서는 상황이 쉬 끝나지 않을 것이란 고민이 있었습니다. 관련기사에 따르면 “사태를 조기에 매듭지으려면 검찰수사 발표와 맞물려 김 장관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야당의 사퇴공세에 밀릴 경우 정권의 통제력만 급속히 약화시킬 것이란 반론이 대립했다”고 하네요.


다시 원 기사로 돌아와 한나라당이 만든 자료를 보실까요. 자료는 각종 물의에 연루된 장관급과 대통령 측근들의 문책현황을 상세히 비교한 뒤 “김태정 법무장관이 자진사퇴하는 것은 도리요, 해임은 순리이며 자리 유지는 역리”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음은 기사가 전한 문책 비교 내용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출범 초기인 93년 당시 자녀 특례입학 또는 재산공개에 연루된 박희태 법무·박양실 보사·허재영 건설부장관과 김상철 서울시장 등을 즉각 해임했다. 이에 반해 현 정부 초기 김선길 해양수산·신낙균 문화관광장관 등이 재산문제에 연루됐으나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만 사표수리하는 데 그쳤다. 대통령 핵심 측근 처리 역시 대조를 보였다. 문민정부 때는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전병민 청와대 정책수석·엄삼탁 병무청장 등이 해임 또는 구속됐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고관접 도둑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은 유종근 전북지사와 김 법무장관을 오히려 중용 내지 격려했다”

이 자료를 보고 여당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지요. 국민회의 부대변인이 논평으로 “굳이 전·현정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인사문제를 갖고 ‘깜짝쇼’를 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있다”며 “한나라당은 인사 스타일에서만 계승자를 자처하지 말고 문민정부의 공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당당함으로 전 정권과 영욕을 함께하라”고 힐난했습니다.

어느 정부든 ‘어떤 사람’을 쓰느냐가 그 정부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그리고 기용한 인사들이 문제의 대상이 됐을 때 그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도 더없이 중요합니다. 박근혜 정부 하면 ‘최순실’이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이치이지요.

임지영 기자 iimi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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